황실좌훈의 출발지, 화청지(華淸池 : 화칭츠)

 

베이징에 있던 황제들에게 더운 여름을 나던 청더(承德)피서산장이 있었다면 시안(西安)에 있던 황제들에게는 추운 겨울을 나던 피한(避寒)별장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화청지(華淸池)이다.
화청지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으로 고대부터 수려한 풍경과 질좋은 지하 온천수때문에 역대 제왕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장소이다.
화청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일찌기 서주(西周)시기, 주유왕(周幽王)이 이곳에 려궁(驪宮)을 지었으며, 후에 진시황과 한 무제도 이곳에 행궁(行宮)을 건립하였다.
특히, 당 현종 천보년간(서기 730~743)에 건설한 궁전누각이 가장 화려하며 이때 정식으로 "화청궁(華淸宮)"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당시(唐詩) 중에는 화청지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는 시가 비일비재할 정도로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했다.

화청지 동쪽구역에는 정말약(郭沫若)이 쓴 "화청지" 금자편액이 걸려있으며, 구역 내에는 하화각, 비하각, 오간정(1936년 서안사변 당시 장개석이 머물던 곳) 등의 건축물이 있다.
그 중 온천석벽에 있는 <온천송비(溫泉頌碑)>는 중국 비석예술 중에서도 우수한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화청지는 여산 북쪽 기슭, 진시황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당 현종(玄宗, 712~756 재위)과 양귀비(楊貴妃, 719~756)의 사랑으로 유명한 화청지는 6000년 동안 마르지 않고 겨울에도 43℃를 유지하며 시간당 114톤의 온천수가 나오는 곳이다.
그래서 서주(西周) 유왕(幽王)때부터 이곳에 탕을 만들고 황제들이 온천욕을 즐겼다고 한다.

화청지는 황실좌훈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양귀비가 18년을 머물며 여자로 태어나서 아름다운 미모와 여성다운 건강을 드러낼 수 있는 각가지 방법을 연구하고 실험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양귀비는 통통한 몸집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궁중의 기름진 산해진미 음식으로 살이 오르는데 대한 관심이 컸고 본래의 얼굴색이 가무잡잡한데 대한 콤플렉스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특히 냉증으로 인한 고통이 컸는데 이것이 자신의 미모와 건강에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이곳에서 요양 겸 여성으로서 아름다운 양구비로 다시 태어나는 연구와 노력을 기우렸다.
화청지가 별궁으로 겨울에는 황제가족들의 휴양지로 이용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에는 황제의 건강을 보살필 뛰어난 궁중의사들이 기거하였다.
양귀비는 이러한 화청지의 여건을 이용하여 당시 가장 뛰어나다는 궁중의사에게 자신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보살필 수 있는 방법을 부탁하였고, 양귀비는 이들 궁중의사로부터 여성으로서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배우고 익히는 기회로 삼았다.

화청지 안에 건안제(健安濟 건강과 안녕을 연구하는 서제라는 뜻)를 두고 황제와 자신의 건강과 안녕을 연구하게 하고 이를 시험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양귀비는 화청지 경내에 넓은 약초원을 두어 각종 약초와 식물을 원료로 각종 화장품 개발에도 진력하였다. 양귀비는 자신의 냉증을 치료하는 것이 피부미용과 건강에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바탕으로 황실좌훈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약초를 온천물에 끓인 수증기로 온 몸을 쏘이는 훈증(燻蒸)을 하였다.
양귀비가 사용한 해당탕은 온천에 몸을 데우고 난 이후 좌훈을 했던 장소이다.
화청지 안에는 양귀비가 사용한 해당탕을 비롯하여 황제가 사용한 연화탕, 태자들이 사용한 태자탕 등 20여개의 개인용 온천탕이 있다.

탕도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다. ‘성진탕’은 하늘의 별을 보면서 이세민이 목욕을 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물의 낙차로 몸을 시원하게 해 주었던 ‘마사지 탕’도 있다.
또 발꿈치를 씻도록 되어 있는 ‘시녀탕’도 있다.
시녀탕은 특히 황제의 음식을 만드는 시녀들이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자주 사용했다.
화청지 온천의 수질은 매우 깨끗하며, 수온은 항상 43℃를 유지한다.
다량의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어서 관절염, 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다.
중앙구역에는 당 화청궁 어탕유적박물관이
있으며 연화탕, 해당탕, 태자탕, 상식탕, 성진탕 등의 당나라때 현종과 양귀비가 온천을 즐기던 탕과 문물 진열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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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화청지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양귀비 당시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가장 위쪽 중앙에 보이는 건물이 양귀비가 머물던 곳이며 오른쪽 려산 기슭에 자리잡은 것이 오늘 날의 오간청 자리로 황실좌훈을 연구한 궁중의사들의 서제이고 연구실험실이다. 왼쪽에 나무와 풀이 우거진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 화청지 정원으로 그 안에 각종 화초와 약초를 시험 재배한 곳이기도 하다.

 중국정부가 공식 인정하고 있는 양귀비 초상

이곳은 귀비지(양귀비탕)라고 부르는데 이 안에 양귀비가 목욕을 한 온천이 있다

杨贵妃 (海棠湯) 동서 3.6m, 남북 2.7m의 해당화 꽃잎 모양을 한 해당탕(海棠湯) 내부욕조,      
해당탕은 양귀비의 1인 전용 욕탕이었다고 한다

  양귀비가 목욕하던 해당탕의 옛모습을 재현한 곳이다.

양귀비가 홀로 조용히 온천을 즐기던 탕이다.

  이곳은 양귀비가 목욕을 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는 곳이라고 한다.

연화탕의 내부 - 연화탕은 어탕(御湯)이라 불리는 황제(皇帝)의 욕탕으로, 깊이는 80cm 동서 10.6m, 남북 6m이며 욕조면적 400제곱미터라고 한다

현재 화청지에는 4곳의 온천이 현존한데, 온천의 매시간당 유수량은 112톤, 수온은 43도를 유지하고 있다. 화청지의 온천물은 예부터 여러 광물질과 유기물질이 풍부하여 피부 물리치료에 특효하다고 한다.

 그 밖에 태자가 쓰던 태자탕(太子湯), 궁녀들이 사용하던 상식탕(尙食湯), 사절단을 위해 준비한 별실, 1936년 12월에 일어난 서안사변 당시 장개석이 감금되어 있던 오간청(五間廳) 등이 있다. 또한 화청지 뒤편에는 산세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여산이 자리잡고 있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양귀비가 장기간 미모를 유지한 것과 당태종이 육칠십에도 여전히 정력이 왕성했던 것은 화청궁에서 장기간 귀한약재로 좌훈과 함께 온천욕을했기 때문이라 한다. 화청지 서부 안에는 구룡호(九龍湖), 비하전 길이가 9.15m, 높이가 3.6m인 양옥환봉조온천궁 대형벽화가 있다. 이 벽화는 개원28년 당현종이 여산 온천궁에서 처음으로 양귀비와 술을 마시는 장면이다.

이곳은 일하는 시녀들이 온천을 한 시녀탕이다. 탕의 왼쪽을 보면 작은 구멍이 있다. 이것은 음식을 하는 시녀들이 손으로 발을 씻지 못하고 이 구멍에 발을 문질러 씻도록 한 곳이다.

이곳은 태자탕으로 당나라 12명에 이르는 태자들이 이곳에 들러 온천을 한 곳이다.

이것은 양귀비의 결혼식 모습을 그린 조각벽화이다.

윗 건물은 양귀비가 여성건강과 아름다움을 연구한 건안제이다. 화청지 뒷켠 려산기슭 깊숙이 자리잡은 궁중의사들의 연구실 겸 서제이다.
지금은 이곳을 五間廳(5칸집)이러 부르는데, 서안사건으로 볼모로 잡힌 장개석을 이곳 5칸에 억류한 곳이라는 뜻이다.
아래 사진은 장개석이 머물던 곳을 기념하여 당시의 유물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지만 사실, 이곳은 양귀비의 부탁으로 황실가족과 양귀비의 최대관심이었던 여성건강과 피부미용을 연구하게 한 궁중의사들의 시험실이고 약재실이고 연구실이었던 곳이다.

이곳 건물안에도 연꽃 모양의 이쁜 욕조가 있다. 당시 궁중의사들이 황실좌훈을 연구하면서 사용된 각종 약초들을 시험한 임상실험실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오늘날에는 장개석이 목욕하던 곳으로 역사적 의미를 둔 온천탕으로 유명하다.

화청지에 대한 자세한 화보는 http://blog.daum.net/yjd110777/12691561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