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건강미용비법 소개


   


양귀비 미용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2. 온천욕과 좌훈 그리고 한방 팩

미용과 미백은 온천이다!

온천은 각종 신체 및 피부 질환의 치료에 효과적일 뿐 아니라 피부를 건강하고 부드럽게 가꾸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온천지역에 사는 여성들을 보면 정말 탱탱한 피부와 뽀얀~ 피부빛을 가지고 있는걸 볼 수 있다.
실제로 온천 물에 함유된 다양한 유효 성분들은 오래된 각질층이 자연스럽게 떨어져나가는 과정을 돕기도 한다.
온천은 피부에 좋은 각종 광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특히 유황성분은 피부 각질을 분해하는 성질이 있다. 더욱 온천장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는 쉽게 피부 속으로 투과되어 몸에 충분한 습기를 보충해 주는 효과가 있어 노화와 잔주름살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양귀비가 애용했던 화청지의 온천은 40도 전후의 아주 좋은 온천이다. 찬물을 섞을 필요가 없어서 지하에서 용출되어 있는 천연온천물에 들어가 앉아 있을 수 있다. 온천물이 너무 뜨겁거나 찰 경우, 좋은 온천이 되지 못한다.
양귀비가 즐겨 사용한 화청지의 온천은 피부미용에 아주 특출한 온천이었다. 이러한 온천 물 속에서 30-40분을 지나면 피부의 오래된 각질이 쉽게 벗겨나간다. 때문에 얼굴색이 비교적 검은 양귀비는 하루에 2-3차례 온천욕을 하였다.
아래 사진은
양귀비가 온천을 한 화청지의 개인목욕탕 해당탕이다.(華淸池 온천 모습 구경은
양귀비(4)를 클릭하세요)
    
   
                                         양귀비가 목욕을 즐겨한 해당탕

온천에서 나온 이후 양귀비는 온몸을 손바닥으로 충분히 마사지 하게 하였다. 혈액순환이 왕성할 시기에 몸안에 울체된 어혈과 노폐물을 분해하고 밖으로 배출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장원에서 마사지를 하기 전에 뜨거운 타올로 얼굴을 덥혀주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약 200년 전 일본의 에도(江戶) 시대에 행해졌던 온천 미용법을 살펴보면, 우선 온천 물에 몸을 담가 심신을 편안하게 한 후 얼굴과 전신 마사지를 통해 각질을 제거하였다.

얼굴 마사지를 할 때 특이한 점은 먼저 양손을 수십 번 비벼서 따뜻하게 만든 다음 얼굴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손바닥을 비빈 후 열기가 느껴지면 얼굴을 어루만지듯 문지르고 코, 볼, 입 주변, 눈꺼풀, 귀 순서로 부드럽게 마사지하면 얼굴의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나쁜 피(어혈)를 없애고 피부색을 투명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톡톡치듯이 두르린다.
이러한 맛사지는 바로 온천욕 또는 목욕후 피부가 완전히 이완될 때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피부속 또는 몸 안에, 피부 가까이 있는 여러 노폐물이나 어혈 등이 온천으로 이완된 피부를 타고 신속하게 흐르는 혈액을 통해 곧 바로 분해되기 때문이다.

온천욕 또는 좌훈 후에 마사지를 하는 것은 피부 미용뿐 아니라 우리 건강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목욕 후 물을 씻고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피부미인들은 피부를 손바닥을 이용하여 가볍고 강하게 두들겨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양귀비는 화청지 옆에 마사지실을 따로 지어놓고 온천욕후 궁녀들로 하여금 온 몸과 얼굴을 충분히 마사지하도록 하였다.

그 다음은~! 본격적인 미백 효과의 천연 성분을 사용하였다!

고대 중국 여성들은 씻은 쌀과 황백, 대추, 식물 뿌리등의 한방 재료를 욕탕에 넣고, 그리고 온천욕을 함으로써 피부 속 깊숙이까지 미백 성분들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였다.. 곱게 갈아낸 쌀겨나 한방 재료를 다려서 그 내용물을 거즈에 넣고 얼굴 피부에 직접 바르거나 문지르기도 해서 천연 그대로의 재료로 화이트닝을 할 수 있었다.
현대적인 한방 팩의 원조였다. 

화이트닝을 막는 것은 바로 부분적인 색소 침착과 칙칙한 피부 톤, 거친 피부결이다.
우선 피부 표면의 과잉 피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산화되어 피부를 검게 보이게 하고 화장을 흐트러뜨려 얼룩이 생기게 한다. 부주의한 세안으로 피부 표면에 남은 화장품의 유분이나 노폐물도 피부를 전체적으로 거무스름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요인이다.
여기에 멜라닌을 함유한 오래된 각질은 피부 전체를 뒤덮어 기미와 주근깨 부분을 한층 강조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화이트닝을 제대로 하려면 클렌징을 철저히 해서 죽은 각질을 없애주고,!
그 다음 피부를 매끄럽게 해야 한다.
온천에서 쌀가루나 한약재 주머니로 피부의 각질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지나서 화이트닝 영양분을 깊숙히 넣어주면 피부는 멜라닌색소를 억제 시키면서 하얗게~ 하얗게~가 될 수 있다.

중국 최고의 미인이라 칭하는 양귀비도 하얀 피부를 가지기 위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일산화 납 성분으로 조제한 ‘내국 영롱산’이라는 비법을 사용하여 아름다움을 유지했다고 전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의 미에 대한 집착은 끝이 없다. 나중에 나의 게으름 때문에 후회하지마시고  부지런히 피부를 지켜주어야 한다.

온천욕과 천연마사지, 이 두가지는 양귀비를 천하 제일의 미인으로 만들었으며 희고 아름다운 피부를 만들어 준 주인공들이다. 양귀비는 때때로 온천욕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태의국(황제와 황후비빈들의 치료를 위한 황실병원)으로 하여금 오장육부에 좋은 각종 한약재를 온천물에 넣고 그 증기를 쏘이는 좌훈(훈증)을 즐겨 하였다.
온천물의 각종 미네랄 성분과 식물성 한약재의 각종 미량원소를 미용건강에 이용한 것이다.
좌훈은 온천욕에서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효과를 가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양귀비는 자신뿐 아니라 화청지에 사는 많은 궁녀들로 하여금 좌훈과 온천을 통해 얻고자 한 피부미용에 대한 실험을 계속했다. 화청지 않에는 황제의 목욕탕뿐 아니라 궁녀와 태자 여러 비빈들과 벼슬아치들을 위한 수십개의 온천탕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좌훈후에 현종과의 성생활에 큰 만족을 주었고 이를  계기로 중국황실에서 여성들이 좌훈을 황제를 유인하는 방법의 하나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좌훈은 여성의 이완된 자궁과 질 수축에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좌훈 후 후각에 좋은 한약재의 냄새가 다른 향기와 조합하여 남성을 유인하는 방향제로 사용된 기록들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좌훈의 큰 효과는 장기의 냉기를 해소하고 생리를 좋게하여 피부를 아름답게 하는데 있었다. 그 후 좌훈은 황실 내 황후비빈들의 중요한 미용건강법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각종 부인병 및 여성건강과 미용을 위한 비방으로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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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간 양귀비가 머물며 건강과 마용을 위해 힘을 썼다는 화청지를 돌아보고 가자.
양귀비가 즐겨 애용한 화청지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 유명한 곳이다. 청지(華淸池)는 서안에서 25㎞정도 떨어진 여산(驪山)산록에 있는 온천이다.(화청지에 대한 자세한 화보를 보고자 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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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제왕이 행궁별장을 세워 휴양했던 곳이며 당나라 말엽 양귀비와 현종이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화청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전해지는 역사에 의하면 西周시대에 이곳에 驪宮을 세웠으며, 진대에는 이곳에 石宇, 당나라 현종시대에는 이곳을 더욱 크게 넓혔고 이름을 "화청궁"이라 고쳤다.
또한 이곳이 온천위에 지워졌으므로 "화청지"라고도 불리웠다. 756년 안록산의 난으로 화청지는 불에 타서 훼손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된 것은 청나라말부터 시작하여 1958년 대규모의 문화재 복원사업을 진행하면서이다.

이곳은 또한 1936년 12월에 서안사변(西安事變)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장개석은 장학량(張學良)에게 공산당 토벌을 명하려 왔다가 국공합작을 주장하던 장학량에게 쫓겨 이곳에 숨어 있다가 결국 체포되어 국공합작이 이루어졌다.
양귀비가 목욕을 했다는 해상탕(海常湯)은 지금도 섭씨 43도의 온천물이 가득한데 일반인에게 공개되므로 몸을 담가 볼 수도 있다.  이 화청지의 온천은 광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목욕 후에는 기분이 상쾌해지며, 관절염과 피부병에도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중국 국가에서 보호하는 중요 문물 보호단위이다.
 옛날부터 이곳은 유람, 목욕의 좋은 곳이였으며 1997년 국무원에서는 화청궁유적을 전국 네번째 문물중점보호단위의 하나로 공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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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청지는 옛날 도읍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리적위치, 아름다운 여산(驪山)풍경, 자연이 가져다 준 천연온천으로 역대 황제들의 발길을 끌었다.

주(周), 진(秦), 한(漢), 수(隋), 당(唐) 등 역대 봉건 통치자들이 이곳을 별궁으로 사용하였다. 화청지의 유구한 역사는 원시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갈수 있다. 일찍 6000년전의 씨족사회때 원시 선민(先民)들의 활동흔적을 찾아볼수 있다. 서주(西周)말기 주유왕(周幽王)은 여기에 여궁(驪宮)을 세웠고 진시황은 여기에 여산탕(驪山湯)을 건설하였다.
한무제때 진시황이 건설한 기초위에 더 건설장식하여 황당석정(皇堂石井)을 만들었다. 수문제(隋文帝) 개황3년(기원583년) 화청지를 더욱더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하여 측백나무 1000여 그루를 심어 그 풍경을 절경에 도달하게 했다.

정관18년(기원644년) 당태종 이세민(唐太宗 李世民)이 탕천궁(湯泉宮)을 건설하였다. 당현종(唐玄宗) 개원(開元), 천보(天寶)년간 확대건설을 통하여 새롭게 궁전을 세우고 이름을 화청궁이라 불렀다.
화청지는 역사기록에 따르면 기원 745년부터 755년까지 매년 10월이면 추위를 피하여 당현종이 양귀비와 여러 대신들을 대리고 화청지에 왔다가 이듬해 봄이 되여야 장안성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동안 정사를 처리하고 국사를 의논하며 사절를 접견하는 일들은 모두 여기에서 진행해야 했으므로 화청지는 점차적으로 당시의 정치중심으로 되여 버렸다. 천보14년(기원755년) 안사의란(安史之亂)이 일어나므로 현종이 성을 버리고 양귀와 그 자매를 데리고 서쪽으로 도망갔다. 이때로부터 화청지는 황페해지기 시작했고 정치, 경제의 중심이 바뀜으로 그의 특수성지위도 잃었다.

전하는데 의하면 주유왕(西周的周幽王)이 여기에 여궁(驪宮)을 건설하고 진시황이 돌로 신녀탕천(神女湯泉)을 지었다. 이렇게 진한수조(秦﹑漢﹑隋)에 고쳐서 쓰다가, 당조에 이르러 더 크게 확장하였으며 특히 당현종 천보년간에 건설한 궁전은 더욱 호화롭다.
온천을 확장하여 못을 만들고 이 못이 궁전안에 위치하였다하여 궁전을 화청궁이라 불렀고 못을 화청지라 불렀다.

화천지 동부: 대문에는 곽말약(郭沫若)이 친히 쓴 화청지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안에는 하화각(荷花閣), 비하각(飛霞閣), 오간청(五間廳)과 삼간청(三間廳)이 있다. 그중 온천옆에 온천송비(溫泉頌碑)는 중국 비석예술의 정품(精品)이다.

화청지 중부: 이는 당나라 화청지 목욕탕의 유적박물관이다. 안에는 연화탕(蓮花湯), 해당탕(海棠湯), 태자탕(太子湯), 상식탕(尙食湯), 성진탕(星辰湯), 문물진열실, 황제의 약욕(藥浴)탕이 있다. 양귀비가 장기간 미모를 유지한것과 당태종이 육칠십에도 여전히 정력이 왕성했던것은 화청궁에서 장기간 약으로 목욕(좌욕, 좌훈)했기 때문이라 한다.

화청지 서부: 안에는 구룡호(九龍湖), 비하전(飛霞殿)이 있다. 비하전 북쪽에는 90개의 한백옥으로 조성된 길이가 9.15m, 높이가 3.6m인 양옥환봉조온천궁(楊玉環奉詔溫泉宮)대형벽화가 있다. 이 벽화는 개원28년 당현종이 여산온천궁에서 처음으로 양귀비와 술을 마시는 장면이다.

 

 

 

 

 

 

 

 

http://ynucc.yeungnam.ac.kr/~history/relicchin10.html

화청지 구경하기

位於西安臨潼縣驪山北麓。相傳西周的周幽王曾在這裡建離官。秦﹑漢﹑隋各代先後重加修建﹐到了唐代又數次增建。名曰湯泉宮﹐後改名溫泉宮。到了唐玄宗時又大興土木﹐治湯井為池﹐環山列宮殿﹐此時才稱華清宮。因宮在溫泉上面﹐所以也稱華清池。

唐代華清池是帝王妃嬪游宴的行宮﹐每年十月到此﹐年終返回。據記載﹐唐玄宗從開元二年(714年)到天寶十四年(755年)的41年時間裡﹐先後來此達36次之多。現有4個泉眼﹐每小時總流量112噸﹐水溫43度﹐內含多種礦物質和有機物質﹐沐浴對理療皮膚很有幫助。白居易《長恨歌》就寫道﹕“春寒賜浴華清池﹐溫泉水滑洗凝脂”。

華清池大門上方有郭沫若書寫的“華清池”匾額。進了大門就見兩株高大的雪松昂然挺立﹐兩座宮殿式建築的浴池左右對稱﹐往後是新浴池﹐由新浴池往右行﹐穿過龍牆便是九龍湖﹐湖面平如明鏡﹐亭臺倒影﹐垂柳拂岸﹐湖東岸是宜春殿﹐北岸是飛霜殿為主體建築﹐沉香殿和宜春殿東西相對﹐西岸是九曲迴廊。由北向南過龍石舫﹐再經晨旭亭﹑九龍橋﹑晚霞亭﹐便到了仿唐“貴妃池”建築群。“蓮花湯”池形如石蓮花﹐供皇帝沐浴﹔“海棠湯”池形如海棠﹐供貴妃享用﹔“尚食湯”是供大臣們沐浴之處﹔“星辰湯”傳說原址上面及四週無遮物﹐沐浴可見天上星辰﹐故名。在星辰湯後面還有溫泉古源。出了貴妃池向前行便進望湖樓﹐先見荷花池然後經飛霞閣﹐傳說此閣是貴妃
浴後觀景及涼發之處。接著來到五間亭﹐震驚中外的西安事變發生時蔣介石曾在此居住過。後面驪山的半腰間虎斑石處還有一座“兵諫亭”﹐高4米﹐寬2﹒5米﹐水泥鋼筋結構﹐兵諫亭匾額是用貴重的藍田玉製成。

走出望湖樓﹐向右可沿著一條磚砌的台階上行﹐直登蒼翠蔥綠﹑美如錦繡的驪山遊覽。
 

양귀비가 목욕을 했다는 해상탕(海常湯)은 지금도 섭씨 43도의 온천물이 가득한데 일반인에게 공개되므로 몸을 담가 볼 수도 있다. 이 화청지의 온천은 광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목욕 후에는 기분이 상쾌해지며, 관절염과 피부병에도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겨울에 화청지에 같음에도 불구하고 나무와 화초들에 꽃이 만발해서 깜짝 놀랐다.이 모든 것이 조화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고, 실제 나무에 피는 꽃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꽃을 달아놓았다는 사실에 쓰러졌다. ㅡㅡ;;
이화원보다는 많이 작지만, 아기자기 여성의 향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화청지에 있는 모든 물이 온천물은 아니다. 여러 호수 중에 가장 작고 큰 용에서 물이 나오는 곳이 진짜 온천물인데, 이 물 역시 관리하는 사람이 아침에 와서 물을 틀고, 저녁에 물을 잠근다고 했다.
호수 가운데 서 있는 양귀비의 동상이 이색적이었다. 양귀비는 풍만함에도 불구하고 잘록한 허리로 유명했다던데, 그 당시에도 서구형 몸매였다고 한다.

 

양귀비의 결혼식 벽화이다.
원래의 황후가 보이며, 양귀비가 다소곳이 앉아있다. 안녹사가 공을 세워서 현종은 안녹사에게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한다. 안녹사는 나중에 생각나면 말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자리를 뜨는데, 후에 현종과 양귀비의 혼인식에 안녹사가 나타나 양귀비를 어머니로 모시겠다고 한다. 안녹산은 물론 양귀비보다 나이가 많았다. 현종은 약속한지라 이를 허락하고, 이대부터 안녹사는 양귀비를 어머니로 모시고 자유롭게 양귀비와 만났다고 한다.
둘이 사랑을 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후에 양귀비가 자결한 이유는 바로 이렇듯 안녹사와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신하들이 양귀비를 죽일것을 요구하자 현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 명했기 때문이라 한다.

 

 

원래 온천을 하던 곳은 지붕이 없었던 곳도 있었는데 후세에 사람들이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건물을 올렸다고 한다.
양귀비가 목욕하던 곳 바로 옆이 현종이 목욕하던 곳이었는데, 양귀비가 목욕을 마친후 현종이 있는 곳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이 외에도 신하들과 함께 들어갔던 거대한 목욕탕도 있고, 하인들이 몸을 씻던 곳도 있는데, 음식을 나르는 하녀들은 자신의 발을 손으로 씻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온천 바닥에 보면 작은 골들이 있는데, 여기에 발을 문질러서 발을 씻었다고 한다.
양귀비의 무덤에는 양귀비의 시체가 없다고 한다. 양귀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는 하지만, 그 시체를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못찾아서 그랬다고도 하고, 일본사람들의 경우 양귀비가 일본으로 몰래 도망쳤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쨋든 양귀비의 무덤에는 양귀비의 옷가지만 묻혀있는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얽혀져 있다.

옛날에 굉장히 얼굴이 못생긴 여자가 있어서, 시집은 커녕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됐다고 한다. 그 여자가 하루는 너무도 속이 상해서, 양귀비의 무덤에 가서 울었는데, 얼굴이 흙투성이가 될 정도로 울었다. 집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얼굴을 씻어보니 피부가 너무 깨끗해져서 이뻐졌다는 이야기이다.
중국인들은 그 지역의 흙이 피부에 좋은 황토흙이라 그렇다고 이야기 하던데, 어쨋든, 그 흙을 팔기도 하고, 몰래 봉투에 담아오기도 한다. 양귀비의 무덤은 화청지가 아니라 그 옆에 있다(너무 커서 무덤인지는 상상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