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황실 좌훈 모습(동영상 자료)

 

2008년초 극장가에서는, 중국 당나라 말기의 황실을 배경으로 한 중국 장예모(張藝謨) 감독의 황후화(滿城盡帶黃金甲)라는 영화가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서기 928년으로서 당나라(AD  618-907)가 주전충에게 귀주로 쫓겨간 후당(後唐 AD 923-936)시대로서, 우리나라 고려 왕건태조 10년에 해당한다. 황제의 명에 의하여 독이 든 탕제를 매일같이 마셔야 하는 황후와 황제와의 갈등을 그린 영화이다.



황후의 아버지였던 부왕을 죽이고 황제에 오른 남편에 대한 깊은 원한으로 황후는 왕자를 꼬드겨 황금 갑옷을 입은 십만 병사들이 황제에게 칼을 겨누게 한다. 이에 황제를 따르는 수십만의 병사들이 맞서는 황제부부간에 벌어지는 싸움과 애증을 그린 영화이다.

 

당나라는 서기 618년 이연(李淵)이 건국하여 907년 애제(哀帝) 때 후량(後梁) 주전충(朱全忠)에게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20대의 황제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황실좌훈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양귀비(서기 719~756년)는 당나라 중기 현종때의 사람이므로 황후화에 나오는 황실좌훈 모습은 양귀비가 죽고 난 172년 후의 일이다. 총 94분간 상영되는 이 영화에서 약 3분정도 황제의 좌훈모습이 나오는데, 그 만큼 좌훈은 중국황실에서 일상화된 황실가족 생활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아래 동영상에서 당나라 때 중국황실에서의  좌훈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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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황실좌훈은 정확한 역사자료와 근거일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른 좌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황실좌훈은 세계적 미인으로 유명한 양귀비에 의해 개발된 여성건강 미용비법이다.
양귀비(서기
719~756년)는 중국 당나라 중기 현종의 귀비로서 좌훈법을 처음으로 개발, 체계화시킨 사람이다. 좌훈은 그 후 1,300여년동안 중국황실의 황제와 황후비빈들의 건강미용 비법으로 사용되었다.

황실좌훈은 당나라 이후 중국황실 가족의 건강을 책임맡은 태의청(황실병원)에 좌훈담당 관리를 두어 황제는 아침 묘시(5-7시)에 황후비빈은 저녁 잠자기 전 술시(7-9시)에 반드시 좌훈을 하도록 하였다. 중국황실에서 좌훈은 식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황제 황후의 일상생활가운데 아주 중요한 행사의 하나였다. 좌훈(자리앉을 座, 불기운 燻)이라는 낱말은 어설픈 우리나라식 한문어이지만 중국황실에서는 약증(약기운 藥, 증기쏘일 蒸)이라 하였고, 민간에서는 훈증(불기운 燻, 증기쏘일 蒸)이라고 하였다.

1,100년전의 당나라 황실에서 황제의 좌훈모습을 사실 그대로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영화를 통하여 당시 황실에서의 좌훈이 얼마나 일반화되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황제의 좌훈모습만이 그려지고 있는데 황후비빈의 좌훈은 황제와 다른 종류의 의자와 좌훈제를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좌욕의 역사가 어떻다고 말하지만 확실한 근거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없으며 중국 황실좌훈처럼 역사적 의학적으로 근거가 분명하고 그 효과가 증명된 것은 없다. 양귀비가 처음 시작했고 중국 황실안에서 과거 1,300여년간 황실가족의 건강과 미용을 위하여 좌훈을 했다는 확실한 처방법과 좌훈기록이 남아있다.

중국황실 가족의 건강을 담당하는 太醫廳의 문서를 보면 누가 몇년 몇월 몇일 몇시부터 몇시까지 어떤 약재를 얼마나 사용하여 어떻게 좌훈을 했다는 일지가 남아 있다. 좌훈담당 관리가 황실가족의 치료일지로 남긴 것이다. 때문에 어떤 약제를 사용해서는 않된다거나 사용하는데 주의할 것이 무엇이라는 등의 충분한 자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아주 중요하다.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좌훈의자의 앞뒤 좌우에 각각 2개씩 8개의 좌훈약탕기가 있다. 좌훈제의 약초들을 종류별로 따로 끓여서 궁합이 맞는 좌훈약재를 한 통에 부어 사용하였다. 약초간의 궁합이 맞지 않고 상극이 되면 건강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좋다고 하여 아무런 약초나 좌훈제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처럼 좌훈약제에 거의 무지한 사람들이 주섬주섬 넣어주는 좌훈제로 좌훈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았으면 한다.

좌훈의자도 마찬가지이다. 좌훈제는 좌훈제를 끓인 수증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우리 몸의 근육과 피부를 이완시켜 모공을 열고 들어가서 피부층에 축적된 노폐물을 뽑아내는 동시에 우리 몸에 필요한 적당한 수분과 영양물질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은 의자에 불편한 자세로 장시간 웅크리고 앉아있게 되면 오히려 근육이 경직되고 피부가 굳어진 상태로 있어 좌훈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좌훈의자를 아무렇게나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황실좌훈 의자는 중국황실에서 과거 1,000여년 사용해오면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무수히 개선하면서 내려온 것을 표본으로 하여, 거창한 황실장식을 생략하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만든 것이다. 황실좌훈제 또한 과거 1300여년 동안 중국황실에서 개발 사용해온 비법 그대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좌훈제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황후화에서 본 황실좌훈 소개

지금도 북경 자금성 안 옛 중국황실 건물안에 황제와 황후비빈들이 사용하던 좌훈의자가 그대로 남아있고 황실가족의 좌훈일지가 남아있다. 쟝이모우 감독이 영화가운데 황제의 좌훈모습을 묘사한 것은 황실의 일상적인 행사의 하나라는 점에서 그려냈을 것이며, 아무렇게 표현치는 않았을 것이다.
나름대로 역사적 근거와 사실에 바탕을 두고 만들었을 것이기에 말과 글로만이 아닌 중국황실 좌훈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영화속의 좌훈방법을 차례로 소개한다.

1) 먼저 좌훈약재를 끓이는 놋탕기에 물을 부어 불위에 올려둔다. 오늘 날과 같이 좌훈제 전체를 좌훈냄비에 넣어 한번에 끓이지 않고 좌훈제 하나하나를 놋탕기에 따로 따로 끓였다.

 

 

2) 한편으로 작은 크기의 작두를 이용하여 좌훈에 사용할 각종 재료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3) 좌훈제는 갈아야 할 것과 짤라야 할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아래 사진은 마쇄기에 갈아야 할 좌훈제를 간다.

 

 

4) 가루로 만들어야 할 좌훈제는 절구에 넣어 찧는다

 

 

5)갈고 자르고 찧은 각 좌훈제를 각각의 놋탕기의 끓는 물에 넣는다

 

 

6) 각 놋탕기에 넣은 좌훈제를 좌훈제의 성분이 충분히 우러나도록 한 시간 정도 연한 불에 다린다. 좌훈제에 따라 다리는 시간이 다르다. 좌훈제는 한약과 같이 약한 불로 한 시간 반 이상을 다려야 좌훈제의 성분이 충분히 우러난다. 오늘 날 줄기와 뿌리로 된 좌훈약초를 넣고 40-50분 정도 끓이면서 좌훈하는 것은 좌훈제의 성분이 우러나다가 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7) 끓여진 좌훈제는 감독관의 검사를 받고서 탕제실에서 황실좌훈실로 옮겨진다.

8) 충분히 끓인 좌훈제 탕액을 좌훈의자 아래 전후좌우 8곳에 장치된 커다란 서랍식 좌훈약탕기에 봇는다. 아래는 의자 아래 약탕기에 좌훈제탕액을 부은 후 서랍을 닫는 모습이다.

 

 

9) 좌훈의자 아래의 좌훈약탕의 증기가 좌훈의자 위의 구멍사이로 올라온다. 사진은 황제용 좌훈의자로서 의자위에 48개의 작은 구멍을 통하여 충분한 수증기가 올라오도록 되어 있다. 황후 등 여자가 사용하는 좌훈의자는 아래에 둥글고 큰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충분한 수증기를 이용하는 것이 황실좌훈의 특징이다.

 

 

10) 아래 상단 사진은 좌훈의자 전체를 두꺼운 천으로 덮어 황제가 따뜻하게 좌훈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다. 의자 안이 충분히 덥여진 후  하단 사진과 같이 좌훈직전 커버를 걷어낸다.

 

 

11) 황제가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좌훈의자 위에 앉는다. 황제는 수증기가 전신에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얇은 명주옷을 입었다. 그러나 황후는 생식기와 온 몸에 수증기가 들어갈 수 있도록 옷을 입지 않았다. 하단 사진은 황제가 좌훈의자 위에 좌정하면 시녀들이 황제의 온 몸을 감쌀 수 있는 일종의 좌훈까운을 덮는 모습이다.

 

 

12) 황제의 건강과 좌훈을 책임진 태의가 황제의 좌훈을 최종 점검하고 황제에게 좌훈제의 내용과 황제의 건강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오늘 사용하는 좌훈제의 내용은 황제의 최근 건강을 고려하여 이러한 효과가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황제(남자)의 좌훈은 아침 6시경(묘시)에, 황후비빈(여자)은 저녁 7~9시 사이, 잠자기 전에 하였다.

 

 

황실좌훈은 역사적 기록과 매일매일 황제와 황후비빈들의 좌훈일지가 기록되어 있다. 어떤 문제로 어떤 약재를 사용하여 어떻게 좌훈을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것저것 대충대충 집어넣고 좌욕을 하던 우리나라 좌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미 2천년 전부터 중국황실에서 일반화된, 그리고 2천년을 전승되어온 황실좌훈의 뿌리가 있다.-